8월 22일 – 경희궁

1년 만에 미국 친구를 만났다. 영어로 쓰려니 괜히 편지가 되어버릴 것 같아 그냥 한국어로 적는다. KHC를 잠깐 소개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정말 아끼는 친구다. 학생회 일도 같이했고, Big Sib 멘토링 프로그램도 같이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학년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티격태격 장난 많이 치는 사이지만, 내심 많이 존경하는 친구다. 매번 내 예상을 넘어서는 면이…

1년 만에 미국 친구를 만났다.

영어로 쓰려니 괜히 편지가 되어버릴 것 같아 그냥 한국어로 적는다. KHC를 잠깐 소개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정말 아끼는 친구다. 학생회 일도 같이했고, Big Sib 멘토링 프로그램도 같이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학년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티격태격 장난 많이 치는 사이지만, 내심 많이 존경하는 친구다. 매번 내 예상을 넘어서는 면이 있다. 3천 명이 넘는 큰 학교에서 거의 모든 학생,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만큼 외교적이다. 내가 70%쯤 E라고 하면 이 친구는 250%쯤 될 것 같다.

일단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업무! 방을 혼자 쓰는 건 편하지만 하는 일 특성상 항상 기운이 쭉 빠진다. 이날 역대급 월루… 폰을 되게 많이 봤다. 원래 낮에는 인스타를 잘 열지 않는데 괜히 설레서인지 계속 켰다 껐다 했다. 그리고 엄청 웃었다. 미국에서 복무하러 온 강동현님과 캘리포니아에서 온 KHC, 그리고 느닷없이 토네이도 계정으로 디엠을 보내온 박진수 오빠까지 😆 다들 잘 놀아줘서 힘이 났다! 

생각보다 미국에서 오는 친구들이 많다. 여름만 해도 YJ, 올리비아, 조나스, 조나단, 안젤라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식사 장소를 고르는 일은 (당연히?) 내 몫이다. 문제는 나도 서울을 잘 모른다. 특히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식당은 더더욱. 이날도 결국 장소를 고르느라 점심시간 대부분을 썼다. 서울 더 탐방해야지…

Screenshot

저녁 약속은 7시 반, 퇴근은 6시, 학교 영자 신문 미팅은 6시 40분. 계산상으로는 저녁 장소 근처 스타벅스까지 35분이면 딱 도착해서 미팅을 마치고 저녁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었다는 전을 간과한 유진. 도로가 꽉 막혀 결국 버스 안에서 미팅 했다. 얼굴도 없이 떠들어댔는데도 묵묵히 들어준 임원진들이 고마웠다. 그래도 10월 주제는 잘 정리된 것 같다! 다들 연세 애널스 만괂부 🦅

미팅이 예상보다 길어져, 폰 붙든 채 예약한 장소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런데 길목에서 뜻밖의 장면! 어머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버스를 향해 손을 내미는 조형물이었다. 저 가족은 무슨 사연으로 저렇게 이별하고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별의별 생각이 스쳤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들어섰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친구한테 “Do you want to see something beautiful?” 해놓고는 조형물을 보여주면서 “이별하는 가족 같아…”라고 했는데 

??

심지어 뒤에 여자애 웃고 있다

친구가 뭘 망상한 거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하다 다음부턴 설명부터 읽을게.. 근데 진짜 웅장하게 한국의 역사까지 설명했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쨌든… 우리가 간 곳은 한정식 집이었다. 사실 처음엔 내가 외국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로제 파스타 이런 걸 먹으러 가자 했다. 근데 친구가 한국 고유 음식 먹자고 해서 다시 열심히 뒤져 찾아간 곳이다. 솔직히 고마웠다. 나도 한정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거의 5년 전이었기에 신선한 경험이었다.

보쌈 정식이 진짜 비주얼부터 장난 아니었다. 근데 보쌈 자체를 상 차린 지 거의 한 시간? 지나서야 먹기 시작했다. 재밌는 얘기가 많았다. 사실 배도 꽤 고팠었는데 얘기 듣고 또 얘기하느라 공복도 완전 망각했다. 역시 미국은 썰 스케일이 다르더라 🙂‍↔️

여기서 또 내심 놀랐던 게, KHC 얘는 진짜 넉살 참좋다. 아주머니랑도 금방 친해져서 얘기 나누는 모습이 괜히 기특하면서도 너무 웃겼다. 계산할 때는 애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완전 진지한 얼굴로 “너무 핸섬하다, 연예인 같다”라고 아주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애 반응이나 아주머니 진지함이나  웃겨 죽는줄 알았다. 여튼 그의 국제적인 친화력은 참 경이롭다. 

걸어서 광화문까지 갔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앞에도 서 보았다. 한국에 온 뒤로 광화문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문화 탐방을 한 셈이었다. KHC가 4.5개 국어 실력을 발휘해 동상에 새겨진 한자도 읽어 주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배우고 사진 찍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내 일상을 늘 새롭게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어 나는 좋다.

(일부러 돌아가는) 버스 타고 인사동으로 쓩

편의점에 잠깐 들렀다가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금요일 밤인데도 문이 거의 닫혀 있어 조금 의외였다. 결국 들어간 곳은 탐앤탐스였다. 사실 더 한국스럽고 특별한 디저트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되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친구가 웃으며 받아주니 괜찮았다. 마차 케이크랑 밀크티, 컵 빙수까지 직접 주문하는 모습이 괜히 기특했다. 그리고 이때 또 종업원님이랑 지나가는 아저씨랑 친구 먹더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근무 탓에 요즘은 자정이 넘으면 바로 잠든다. 인사동을 걸을 때쯤 몸은 이미 무거웠다. 그런데도 크게 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같다. 1년 만에 만남인데 낯설지 않았고 재밌었다. 따분한 주제들로 토론하기도 했고, 미국과 한국의 문화 간극을 나눴으며, 의식 깊숙히 욱여둔 이름들을 다시 상기했다. 얘기하면서 서로에 대해 잊어버린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다시 알아가는 과정이 내게는 반가웠다.

그리고 결국 탐앤탐스에서도 새벽 한 시 반에 쫓겨났다. 나는 잠들어야 했고, 친구는 일을 이어가야 했기에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멋있는 애다. 지금은 정경 쪽 논문 일을 하고 있는데, 내용만 얼핏 들었는데도 흥미롭다.  얼른 읽어보고 싶다.

버스 정류장에서 인사를 나눴다. 헤어진다는 실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이상하게 언제나 어떻게든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친구다. 내가 원래 안녕에 무덤덤한 걸 수도 있고.

결국 두 시 반쯤 침대에 누웠다. 조용히 있으려니 KHC가 만들어낸 한국어 표현들이 다시 떠올랐다. 웃으며 잠든 건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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